그림책
서른 (김남용 시인 제4시집)
시편을 다시 묶으며 다시 유서를 쓰겠다 시를 쓰면서부터 나는 유서를 장식할 자모들을 나의 동굴 속에 수집해 왔을 거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목마르다 시어들은 떨어진 꽃잎처럼 오그라들며 타다, 타고 있다 적멸(寂滅)의 날, 나는 고단한 호흡을 그치고 시의 유서를 쓰겠다 시의 유서는 도피를 위한 변명 따위일 수 없다 부르르 몸을 치떠는 내 의식의 흰 살갗엔 붉은 핏자국 선명하다 고갈된 자유를 되찾으려는 몸부림 아프다, 상처 없이 아프다 유서 쓰기를 멈추는 시간이 오면 나의 영혼은 풀씨가 되겠다 그리고 섬과 섬 사이에서 불어온 소금바람에 아무도 몰래 날리겠다